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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불교

사성제와 삼법인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 번역이전의 팔리어 두카(duhkha)의 뜻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by 카페인 뱀파이어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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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며, 다른 존재가 지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법칙으로 나는 오직 이것을 발견했을 뿐이며, 나는 이 법을 깨달아 여래가 되었다.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운동하는 과정인 연기(緣起) 속에서만 존재한다
 
- 석가모니

석가모니-붓다

 

불교는 비관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니다 두카(duhkha) 괴로움이란 어원에 오해

 
 
※ 불교를 처음 공부할 때는 석가모니가 말하는 연기(緣起)와 중도(中道), 반야(般若)를 다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후에 대승불교 사상에서 나오는 공(空) 사상도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불교의 '삼법인'이라는 사상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자칫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불교가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로 오해받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 또한 불교에 사상을 입문하면서 '일체개고 (一切皆苦) '란 단어를 접하고 이 뜻에 공감하면서도 꽤나 오랫동안 미묘하게 찝찝한 부분으로 남아있던 것이 두카(duhkha)였습니다
 
처음에는 부처님 말씀이 틀릴 리가 없다는 약간 종교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점점 '왜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결론 내리는 걸까? 분명 삶에는 즐거움도 있는데 말이지'라는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는데, 왜 굳이 태어남까지 '고(苦)'로 규정하여,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묘사하는 것일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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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어 두카(duhkha)가 한자 괴로울 고(苦)로 번역이 되면서 생긴 오해

예수님이 실제로는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가 아닌 그 당시 대중들에 입말인 '아람어'로 설교했듯이, 부처님도 생전에 그 당시 지식 계급층 사이에서 사용되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부처님이 활동하던 지역인 마가다 지방에 대중들의 입말이던 '팔리어'로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석가모니께서 입멸 후 '원시불교'가 인도전체로 확산되면서, 인도 각지의 다양한 언어들을 통하여 부처님의 설법이 전해지다 보니, 승려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각지의 언어로 번역이 되며, 세존의 말씀이 왜곡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통합하여 기록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때 '산스크리트어'로 정리가 되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인도 마가다 지방에 낯선 언어인 '팔리어'를 괴로울 고(苦)로 번역하면서, 태어남부터 만남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고통으로 본다는 오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Duhkha의 정확한 의미 : 불만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한계'

팔리어 두카는 괴로움이라는 뜻이 맞긴 하지만, 안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가 불만족, 즉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판단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내가 죽고 싶은 시점에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살고 싶은데, 발악하고 괴로워하며 죽는 경우가 허다하죠
 
 
일상에서도 마음은 즐거운 감정이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즐거운 감정은 금방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쾌감과 관련된 신경호르몬인 '도파민'은 금방 고갈되고 우리는 곧 불만족스러워집니다. 반대로 불쾌한 기분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불쾌한 기분은 끊질깁니다. 피하고 도망가도 자꾸 따라옵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으면 심심해지고 권태를 느낍니다. 그래서 이 또한 두카(duhkha)입니다
결국 즐거움이나 불쾌함이나 권태 모두 종국에는 불만족스러움을 유발하게 됩니다
즉 석가모니께서 의도적으로 비관적인 면만 부각하면서 염세주의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연기법으로 관하다 보니 '존재'와 '세상'의 실상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대승불교

 
두카(duhkha)는 '존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설정된 상황과 환경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설정된 한계 상황인가?'를 묻고, '이러한 존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존재의 삶'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철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즉 두카는 '존재'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시작점이 되는 '명제'를 설정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지, 불교라는 사상의 최종적인결론이 아닙니다. 소승불교의 최종목적은 '존재'의 문제해결인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의 소멸로 완성됩니다. 사실 이것도 끝은 아니지만요. 후에 나온 대승불교에서는 혼자만 깨닫지 말고, 남도 깨닫게 도와줘야 한다고 하네요
 
아무튼 태어남을 무조건 고통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사성제 고(苦)집멸도에서 '일체개고 (一切皆苦) '를 번역이전의 본뜻을 살려서 해석해 보면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뜻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 나 자체도 내 의지와 바램과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깨닫지 못한 존재인 '나' 무명(無明)'이 어리석은 행동인 행(行)을 하며 업(業)을짓고, 인간의 삶을 끌고 가는 욕망이라는 '업(karma)'이 고통을 초래하는 근원임을 모르고 존재가 끊임없이 괴로움을 사서 겪게 되는 12 연기의 논리가 전개되는 명제가 됩니다
 
※ 석가모니가 연기법으로 바라본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리 12 연기 인연법
무명 → 행 → 식 → 명색 → 유입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老死)
인과율 : 첫 번째 원인인 무명이 깨닫게 되어 자성이 밝아지면 근본원인인 어리석음이 사라지므로 결과인 괴로움 또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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